
희귀유전질환 파브리병 치료 전략에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됐다. 국내 연구진이 일본에서 사용 중인 약물을 재창출해 손상된 혈관·심장·신장 증상 개선 가능성을 전임상에서 확인한 것이다.
KAIST(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한용만 교수는 2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6회 희귀유전질환 심포지엄’에서 파수딜(Fasudil)의 파브리병 다양한 증상에 대한 치료 효과(Therapeutic effects of Fasudil on various symptoms of Fabry disease)를 주제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파브리병은 α-갈락토시다제 A(α-Gal A) 결핍으로 인해 세포 내 글로보트리아오실세라마이드(Gb3)가 축적되며, 이로 인해 뇌졸중, 심근비대, 신부전, 혈관성 피부병변 등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하는 희귀유전질환이다. 발병률은 인구 4만~11만명당 1명으로 추정되며, 특히 남성의 경우 2만2000~4만명당 1명꼴로 더 높은 발생률을 보인다.
현재 표준 치료는 효소대체요법이지만, 환자 1인당 연간 치료비는 한국에서 1억원 이상, 북미에서는 약 30만 달러(약 3억~4억원)에 달한다.
한 교수 연구팀은 환자 유래 역분화줄기세포(iPSC)를 혈관 내피세포로 분화시켜 파브리병 혈관 모델을 구축했다. 이 모델을 통해 Gb3 축적에 따른 ROS 증가, Thrombospondin-1(TSP-1) 과발현, TGF-β 신호 과활성화가 주요 병리 기전임을 규명했다. 또 기존 효소대체요법(ERT)만으로는 혈관 신생(tube formation) 회복이 어렵다는 점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어 한국화학은행 보유 2000여개 임상 화합물을 스크리닝해 Rho-kinase(ROCK) 억제제 ‘파수딜’을 최종 치료 후보물질로 도출했다. 파수딜은 현재 일본에서 뇌혈관연축 치료제로 허가돼 사용 중이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아직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한 교수는 “Gb3 축적이 단순히 대사물질의 문제를 넘어 혈관 내피 기능 저하와 연관된다는 점을 확인했다"면서 "특히 ROS 증가와 TSP-1 과발현, TGF-β 신호 과활성화가 파브리병의 혈관 병리를 악화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드러났다”라고 전했다.
글로벌 파브리병 치료 시장은 2023~2024년 약 22~27억 달러로 추정되며, 2030년에는 40~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투여 시 항체(ADA) 형성으로 인한 면역반응과 제한적인 증상 개선 등 근본적 한계가 지적돼 왔다. 현재 개발 중인 유전자치료 후보물질들도 임상 2~3상 단계로, 아직 승인된 제품은 없다.